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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부 | 2008.02.27 00:00

    일본의 올 상반기 베스트 셀러 가운데 『인텔리전스, 무기 없는 전쟁』이란 제목의 대담집이 있다. 먼저 저자 2명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한 사람은 전직 외교관 사토 마사루(佐藤優). 크렘린에 직결되는 정보원을 갖고 ‘혁혁한’ 실적을 쌓은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통이다. 또 한 사람은 북한 위조지폐와 자금세탁에 관한 독자 정보를 바탕으로 한 소설 『울트라 달러』로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 대단한 화제가 됐던 기자 출신 작가 데시마 류이치(手山鳥龍一)다. 두 사람은 20세기 이후 ‘정보 전쟁’에서의 성패가 일본의 국익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하며 “일본은 정보대국으로서의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논지를 펼쳤다.

    아베 총리
    이 같은 주장은 두 사람만의 생각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이미 구체적인 정책수립에 착수했다.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관방장관을 의장으로 하는 일본 정부의 ‘정보기능 강화 검토위원회’는 정보기구 재편 방안을 지난 2월 말 중간보고서로 발표했다. 핵심은 이렇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창설에 맞춰 정보 평가ㆍ분석을 전담하는 전문조직을 서둘러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NSC 지시에 따라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그 결과를 NSC에 제출하는 임무다. 결국 일본판 NSC와 함께 일본판 중앙정보국(CIA)의 출범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얘기다.

    시오자키 관방장관
    정보기관 창설과 강화는 ‘주장하는 외교’란 구호 아래 외교안보 역량의 강화를 과제로 내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화두 가운데 하나다. “미국의 CIA나 영국의 SIS(일명 MI6), 한국의 국가정보원에 맞먹는 정보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일본에선 무성하다. 얼핏 일본에는 정보기관이 없으니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본에도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다만 각 부처에 정보기능이 분산돼 있을 뿐이다. 조직체계가 겉으로는 엉성해 보이지만 그 실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현재 일본 정부의 정보수집 및 분석ㆍ평가 기능은 내각정보조사실,경찰청 경비국, 외무성 국제정보통괄관조직, 공안조사청, 방위성 정보본부 등으로 분산돼 있다.

    정보 총괄하는 내각정보조사실
    표면적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정보기구는 내각정보조사실이다. 다른 기구와 달리 내각 관방 산하여서 총리에 직결되며 경찰청, 외무성, 방위성 등 정보 관련 기구의 책임자가 참석하는 내각 정보회의와 국장급 실무자 회의인 합동 정보회의를 총괄 주재한다. 국정원, CIA 등 해외 각국 정보기관의 공식적인 카운터파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큰 권한은 총리에 대한 독대(獨對) 보고다. 내조실의 수장인 내각정보관은 매주 한 차례 총리에게 정보 브리핑을 한다. 이 제도는 1980년대 정보역량 강화를 주장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시절 만들어졌다.

    하지만 내조실의 실제 정보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CIA 등 해외 기관과 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원 때문이다. 정원은 170여 명(내각위성정보센터 제외). 이 가운데 경찰ㆍ방위성 등 타 부처로부터의 파견자를 제외하면 순수 내조실 인력은 70∼80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내조실 활동은 공개정보를 분석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또한 CIA 등과의 정보교환을 통해 제공받는 정보가 내조실의 큰 자산이다. 반면 인적 정보(HUMINT) 수집 등 본격 정보기관으로서의 독자적 정보수집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실정이다.

    내조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내각위성정보센터다. 이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정찰위성 4기의 운용을 담당하는 곳으로 320명의 인원이 위성 관제와 화상 분석 등을 맡고 있다. 미국판 국가정찰국(NRO)이다. 일본의 정찰위성은 1998년 북한이 발사한 장거리 탄도미사일 대포동이 일본 열도를 넘어간 직후 도입이 결정됐고 초기 개발에만 2500억 엔이 투입됐다. 올해 2월 네 번째 위성을 발사함으로써 지구상 어느 곳이든 24시간 이내에 촬영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이론적으론 그렇지만 실제로 주력하는 대상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시설이다. 그 밖에 중국, 극동 러시아 등지의 사진도 촬영한다.

    그러나 위성의 성능은 해상도 1m(위성촬영 사진으로 길이 1m의 지상 물체를 판독할 수 있다는 뜻) 정도여서 미국의 정찰위성(10㎝)은 물론 상업위성(60㎝)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 전후의 화상정보 분석에서는 실제로 미국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막대한 예산과 노력을 쏟아 부어 정찰위성을 운영 중인 이유는 오모리 요시오(大森義夫) 전 내각정보관의 설명을 들으면 수긍이 간다. “미국의 화상 제공은 상업위성조차 미국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보여주고 싶은 사진만 보여준다는 뜻이다. 설령 성능이 좀 떨어진다 해도 독자적인 위성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확고한 미·일 안보동맹 체제 구축과는 별개로 일본의 ‘정보 독립’ 염원이 독자적 정찰위성 개발에 응축돼 있다.

    외사 경찰 큰 영향력
    일본의 정보망에서 가장 큰 파워는 다름아닌 경찰이다. 그 핵심은 경찰청 경비국 외사정보부를 정점으로 하는 ‘외사 경찰’이다. 이들은 경찰관보다는 정보요원이란 표현이 더 적확할지 모른다. 전통적으로 북한ㆍ중국ㆍ러시아 정보에 강했고 최근에는 테러단체 정보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하부 조직을 통틀어 1200여 명을 헤아리는 숙련된 인력이다. 이 가운데 엘리트 경찰관은 외교관 신분 또는 경찰 주재관으로 세계 각지에 파견돼 독자적인 현지 정보활동을 편다. CIA도 실제 현장에서의 협력이 필요한 정보는 손발이 없는 내조실보다는 외사 경찰에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외사 경찰은 형사 등 다른 분야를 누르고 경찰 수뇌부를 장악하고 있다. 현 우루마 이와오(漆間嚴) 경찰청 장관도 외사 분야의 요직을 거쳤다. 외사1과장으로 대한항공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를 면회한 경험 등으로 한국 국가정보원에도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고 조총련 사정에도 밝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다. 내조실은 외사 경찰의 자회사로 비유되기도 한다. 1952년 창설 이래 경찰 출신이 수뇌부를 독점해온 관행 때문이다. 경찰에서 서열 3∼4위급 인사가 옷을 벗고 내조실 수장인 내각정보관으로 가는 것이 관례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담당해 아베 총리의 신임이 두터운 현 미타니 히데시(三谷秀史) 내각정보관도 경찰청 외사정보부장을 지냈다. 심지어 주변국의 통신ㆍ전파에 대한 감청활동을 총괄하는 방위성 정보본부 전파부장 자리도 대대로 경찰의 몫이다.

    공안조사청 활동 폭 넓혀
    법무성의 외청인 공안조사청은 외사 경찰의 라이벌이다. 원래는 일본공산당ㆍ적군파 등 좌익 급진단체, 조총련, 옴진리교 등의 동향 감시활동을 펴왔으나 최근에는 북한 문제와 이슬람 및 테러조직 정보 등 해외 정보활동을 강화하는 추세다. 하위 조직을 포함해 500명가량의 인원이 대외정보 수집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사 경찰과 공안조사청의 한계는 스파이 행위 감시 등 방첩활동과 치안유지 등 국내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이다. 현지 수집 정보를 위주로 해외 각국의 동향을 감지하고 정세를 파악해 국가 정책수립에 활용한다는 의미에서의 순수 정보활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 같은 역할은 외무성의 몫이다. CIA나 MI6 같은 대외 정보기구의 부재로 인한 공백을 해외 공관에 파견된 외교관의 활동으로 메우고 있다. 일본 외무성에는 국제정보통괄관조직이 있다. 나카소네 총리 때 만들어진 국제정보국이 그 전신이다. 해외 대사관으로부터 시시각각 올라오는 전문과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및 CIA 정보본부(DI)와의 교류를 바탕으로 정보 평가ㆍ분석을 담당한다. 인원은 8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관련 조직으로 북한ㆍ러시아 등 주변국의 방송을 청취해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는 재단법인 라디오프레스가 있다. 이 단체는 1994년 북한의 김일성 주석 사망 사실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입수해 전파함으로써 유명해졌다.

    “정보대국 잠재력 대단”
    일본의 정보기능은 각 부처에 걸쳐 있는 만큼 다소 방만하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일본식 관료조직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다른 기관과의 정보 공유에 극히 소극적이란 지적이 높다. 중요 정보를 독점하면서 서로 총리에게 직보하려는 물밑 다툼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정보 공유의 장이 돼야 할 내각정보회의나 합동정보회의가 실질적으로는 ‘친목회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아베 정권의 의도는 이처럼 느슨한 정보의 흐름을 하나로 통합해 총리 직할체제에 가까운 강력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일본판 CIA가 어떤 모습이 될지의 최종 결론은 8월로 미뤄졌다. 중간보고서 내용만으로는 기존의 내각정보조사실을 확대 재편해 보다 큰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인 듯하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60여 년. “일본의 존망은 정보전쟁에 달려 있다”는 인식에 일본 정부가 비로소 눈을 떴다. 거기에다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이 받쳐주고 있으니 “일본은 정보 대국으로서의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사토 마사루의 말은 과장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내외신문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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