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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부 | 2007.12.09 00:00
    1904년 고종황제는 한국인과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우정을 쌓게 한다는 취지로 덕수궁에 위치한 2층 도서관에 서울클럽을 설립했다. 회원들은 이곳에서 만나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등 사교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외국인 회원의 대다수는 금광업자들이었다. 일본은 조선의 금광을 개발하는 데 이들의 전문지식을 활용했다고 한다.

    해방 후 미군용 막사와 클럽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서울클럽은 1955년 정부로부터 소유권을 되돌려받았다. 이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개인적 충고자였던 해럴드 여사가 발견한 왕실 기록 덕분이었다. 이 기록은 “서울클럽의 부동산은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이 사용해야 한다”는 고종의 의지를 담고 있다. 이후 해럴드 여사는 클럽의 초대 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나 1970년 클럽은 덕수궁 안의 편안한 보금자리를 잃게 됐다. 일본에서 돌아온 왕손 이구 공이 클럽이 속한 땅을 판 것. 그는 1920년 고종이 작고한 후 일본으로 건너간 영친왕(이은)의 아들로 1963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가족과 함께 귀국했다.

    이후 클럽은 서울 종로구 삼일빌딩(1971)으로, 서울 서대문구 종근당빌딩(1980)으로 이사했다가 1985년 국내외 은행들의 도움으로 남산 동쪽의 신라호텔과 타워호텔 사이에 위치한 사파리 클럽(the Safari Club)에 정착했다. 현재 서울클럽은 한국 최고 수준의 상류층 클럽이자 유일한 가족 클럽으로 각광받고 있다.

    클럽은 객실, 회원들의 비즈니스 미팅이나 친목 모임 장소로 제공되는 회의실, 수영장, 헬스장, 실내골프장, 테니스장, 고급 레스토랑 등을 갖췄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도 있는데,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외국인. 외국 아이들이 많아 일반 영어 유치원보다도 쉽게 영어를 익힐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설 자체는 국내 특급호텔에 비하면 매우 수수한 편.

    오랜 역사에 걸맞게 ‘노블리스 오블리주’ 문화가 뿌리내린 것도 이 클럽의 특색이다. 회비 중 일정액이 고아원이나 양로원, 불우이웃 돕기에 쓰인다. 매달 열리는 가족 마라톤과 가족 골프대회 참가비 전액도 자선단체에 기부된다. 또한 회원 한 가족과 고아원생 한 명을 연결시켜 경제적으로 후원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나 휴가 때는 후원하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도 많다.

    서울클럽의 홈페이지 주소는 www. seoulclub.org. 
    (내외신문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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