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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부 | 2015.10.31 02:01

    [비교뉴스=더피플 나덕흥]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듯한 아침 날씨였다. 심한 가뭄으로 전국이 목말라 있는 요즘이라 이런 날씨는 매우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를 만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인천시 계양구 박촌동. 경기도 부천에서 다문화인들의 대부역할을 자임한 사단법인 경기글로벌센터 송인선 대표도 함께 하기로 했다. 사실 이날 만난 도 송 대표의 소개로 알게 된 것이다.

    드디어 정오 무렵 그곳에 도착했다. 첫 눈에 들어 온 광경은 붉게 녹슨 폐 철근이 작은 산만큼 쌓여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반갑게 맞이해준 주인공 비플람 칸. 올해 46살 된 방글라데시 출신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색에 약간 작아 보이는 키. 흙먼지가 잔뜩 묻은 작업복차림의 칸 씨는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에 온지는 벌써 25. 오자마자 작은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동료 여직원인 한국 여자와 가깝게 지내다 사랑으로 진화해 부부의 연을 맺었고 아이도 낳게 되었다. 지금은 딸 둘에 아들 하나. 막내아들이 열 살 이란다. 그런데 현재 칸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는 곁에 없다. 5년 전 이혼이란 절차를 통해 남남이 된 것이다.

    칸의 한국생활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정착 초기 임금이 체불되기도 했고, 시간이 흘러 불법체류자 신세가 돼 강제 출국을 당하기도 했다. 그 당시 칸은 신혼 초기였다. 그래서 혼인신고도 못한 채 고국인 방글라데시로 쫓겨나게 돼 이들의 관계는 끝이라 생각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칸은 결혼 전부터 아내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심해 더 이상은 못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방글라데시로 온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고 그토록 듣고 싶었던 아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자기야, 나 왔어.” 칸은 꿈인가 생시인가 혼란스러웠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방글라데시 공항에 도착해 있다는 것이었다.

     

    20대 초반 한국여성과의 혼인이 始發點

     

    아이의 엄마는 칸과의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방글라데시로 온 것이다. 주변에서 많이도 만류했지만 그녀는 용기를 냈고 시댁이 있는 방글라데시 다카로 날아 온 것이다. 당시 한 살이었던 큰 딸을 안고 아이의 아빠를 만나기 위해 방글라데시로 온 것이다. 칸은 공항으로 달려가 뜨거운 재회의 사랑을 확인했다..

    이들은 방글라데시에서 2년을 살았다. 불법체류로 인한 강제출국이었기 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2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이민비자를 받아 한국에 입국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온 칸은 공장을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월급이 몇 달 밀리고 받지를 못해 가정을 꾸리기가 벅찼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폐고철과 폐지 등을 모아 파는 일이다. 나름 벌이가 괜찮았다.

    그러면서 둘째 딸과 셋째 아들이 태어났다. 가정도 화목했다. 돈을 모아 빌라로 이사도 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칸이 20089월 고철을 줍다가 발이 철근에 끼어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악몽을 꿨다. 아내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아내는 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떠났다.

    이렇게 칸의 한국 생활 25년이 채워졌다. 한국 여자와 결혼도 하고, 그 사이에 자녀 셋이 태어났고. 고철상업체 대표로서 경제활동도 열심히 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잘 내고. 대한민국 법도 잘 지키며 한 가정의 가장(家長)으로서 굳건히 역할을 다 하고 있다.

    그런데 칸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과거 아내도, 자녀 셋도 모두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국민인데 칸만은 아직도 방글라데시 국민이다. 한국 생활을 25년이나 했으면 이 나라에 대해 알거 모를 거 다 알 텐데 국적은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필기시험에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말은 유창하기 그지없다. 단지 읽고 쓰는 것은 백지와 같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 글자도 거의 모른다고 한다.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도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 보통사람은 아니다.

     

    한국인으로 당당하게 살며 세상에 이로운 일 하고 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자를 배우고 쓰는 부분에 있어서는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슨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따라서 의학적 소견을 받아 보면 어떨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다.

    한국 생활 25년이고 한국 여성과 결혼하고, 자녀가 셋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다문화인은 아마 칸이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칸의 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함으로써 받는 불편함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신용카드를 만드는 것도, 대출을 받는 것도 어렵다. 또한 12년마다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 비자도 연장 받아야 한다.

    문자에 대한 공포감이 있는 칸으로서는 귀화에 필요한 필기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무부에서는 이민자가 한국생활에 필요한 언어와 문화 등을 배우는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귀화 필기시험을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다.

    칸은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 지난해부터 경기 부천시 소재 경기글로벌센터를 찾아 한글을 배우고 있다. 아마 그로서는 그 어떤 고철덩어리를 들어 올리는 것보다 한글을 배우는 게 더 고될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칸 스스로가 이겨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래야만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의 꿈이 무엇인가 물어 봤다. 칸은 내 아이들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성실하게 삶을 살며 자식들을 잘 키워 보탬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좀 더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모으면 어렵게 사시는 어르신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보살피며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외신문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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