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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부 | 2013.05.26 02:02

    한국 국민, 리셋이 필요한 시기

    경제 발전과 과학 발전을 이루려 쉽지 않고 달려 온 수 십 년의 세월, 한 마디로 고난과 역경을 넘어서며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낙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인내하던 시기가 있었다. 돌이켜 보면 스스로 대견함을 가질 만하다. 사회적 기반이나 경제적으로 불모지였던 이 땅에서 풍요로운 땅으로 만들기 위해 국민들의 땀을 흘렸던 시기다. 이에 한국의 경제는 날로 발전하고 따라서 국민들의 삶도 조금씩 윤택해지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얻은 것만큼 잃은 것도 적지 않았다. 어려운 시기에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 간에 인정이 넘쳤다. 그런데 물질적 풍요로움과 달리 인정은 오히려 매말러 가고 있다. 또 잘 못 받아들여진 서양의 합리적 개인주의는 개인의 이기심으로 변질 되어 이웃과의 관계를 악화 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가족 관계 또한 악화일로를 걷게 만들었다. 또 문명 이기의 발달로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보니 걷거나 뛰기 보다는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 서울 시내 도로 교통상황은 거의 포화 상태일 정도다. 이렇다 보니 서울시내 공기는 항상 공해에 시달리고 있고, 시민들 또한 대부분이 차량을 이용하다보니 부수적으로 운동부족으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부지런한 국민성은 게으름으로 변질 돼 가고 있다.

    그리고 음식은 또 어떠한가. 외국의 패스트푸드가 들어와 한국의 고유 음식들은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다. 더 우습지도 않은 것은 대학생들이 거리에서 우리 쌀 소비 촉진을 위해 거리에서 서명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실제 한국에서 생산 되는 쌀의 양은 한국 전체 인구의 30% 정도가 먹을 수 있는 양이라면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도 쌀이 남는 이유를 아느냐고  홍보 활동을 하는 학생에게 물어보았더니 학생들은 전혀 감도 잡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홍보활동을 하는 대학생들 자신들조차 밥을 식사로 하루에 한번 내지 혹은 전혀 먹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초·중·고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본인들부터 잘못된 식생활 문화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농촌을 돕는답시고 거리고 나서는 행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이 어린 학생들이나 청소년들이 패스트푸드를 즐긴 대가로 얻은 것이라곤 비만과 콜레스테롤 과다로 생기는 성인병들이다. 덧붙이면 아토피라는 피부병도 패스트푸드 음식으로 대부분 발생한다. 이런 현상을 이용, 발 빠르게 사업에 접목 시킨 것이 헬스클럽이나 혹은 휘트니스 클럽이라고 불리는 유료 운동 센터다. 돈 들여 음식을 먹고 돈 들여 다시 건강을 위해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하는 웃지 못 할  상황까지 온 것이다.

    또한 한국 국민들은 예전에 없이 살던 때는 서로에 대한 배려심과 양보를 미덕으로 알고 생활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 국민들은 현재 자신의 편리함과 안락함 그리고 본인의 욕구가 충족되면 타인에게 본인으로 인해 피해를 입든 말든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무관심·무책임·무행동이 만연하고 있다. 그래서 이웃집에 강도가 들어 살인 사건이나, 납치 된 여성들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바로 이웃에서 벌어져도 전혀 알지를 못하고 지낸다. 더불어 이웃집 독거노인이 고독사한 지 몇 달 뒤에 발견 됐다는 뉴스는 이미 사회적으로 큰 이슈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경종을 울릴 만한 사건이 가까운 중국에서 발생했다. 수 십 명을 태우고 지방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두 명의 불량배가 승객 중 한 미모의 아가씨를 버스에서 강제로 하차 시켜 성폭행을 하려했다. 이 과정에서 버스기사가 불량배에게 대항하다 중상을 입고 기절하자 이 아가씨가 다른 승객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불량배에게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결국 이 아가씨는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했고, 승객 중 젊은 남자 승객이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웠는지 불량배들에게 대들었지만, 불량배들은 청년을 칼로 찌르고 달아났다. 폭행당한 아가씨는 울면서 버스에 올라탔고, 버스기사가 없는 자석에 아가씨가 앉았다. 이어 칼에 찔린 청년이 승차하려하자 아가씨는 문을 닫으며 왜 남의 일에 참견 하냐며 매몰차게 문을 닫고 출발하였다. 청년을 할 수 없이 부상 입은 몸을 이끌고 걷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를 걷다보니 경찰이 제지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버스가 낭떠러지로 구르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청년이 탑승했던 버스였고, 성폭행 당한 아가씨가 몰던 버스였던 것이다. 이 사고로 버스 안에 탑승하고 있던 승객 전원은 사망했다.

    이 사건에서 시사하는 바는 성폭행 당한 아가씨의 복수심이 너무 강한 것도 물론 잘못 된 것이지만, 수 십 명이나 되는 승객이 무관심한 것에 초점을 맞춰야 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사회생활은 배려다. 배려는 사람들의 민감함과 불안함이 아니라 안정감에서 오는 것이다. 안정감은 넉넉함에서 온다. 관심 또한 같다. 이제는 항상 긴장되어 있는 신경을 조금은 쉬게 할 때가 됐다. 그래야 배려도 관심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이제 예전의 따듯함으로 돌아 갈수 있게 몸과 마음을 한 번쯤 리셋 해 보는 것은 어떤가.


     

    (내외신문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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