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뉴스
  •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 편집부 | 2013.08.12 01:01

    설국열차, 메시지 전달에 급급 별거 없어

    ‘설국열차’ 입소문을 타고 500만 관객을 동원 시켰지만 수작은 아니었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대부분 시사성이 강한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가 관객들에게 시사와 재미 모두를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시사성을 강조하다 보면 오락성이 떨어지고, 오락성을 강조하다보면 시사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은 그 동안 관객들에게 작품성과 재미 두 가지 모두를 충족 시켜 호평을 받아 온 감독이기에, 아마 입소문이 없었어도 관객의 입장에서 큰 기대를 하고 관람을 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연출 감각과 시나리오 구성 능력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영화의 스케일은 큰데 비해 감독의 연출과 구성 능력이 떨어져 조잡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메시지 전달에 있어서도 봉 감독이 ‘설국열차’라는 영화를 통해 환경오염의 심각성, 권력층과 하류층 이지만 그들의 대표가 현 생활을 영위토록 하는 암묵적 묵계를 꼬리 칸(하류 층) 사람들의 순수한 힘으로 봉기하여 기득권을 무너트리고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 보자는 것 같다. 봉 감독은 이 영화를 연출한 후 만족했을지 불만족스러웠을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보는 견지에서는 시사성 전달 면에서나 영화 자체로도 전혀 관객이 흥미를 느낄 만한 작품이 아니었다.

    이 ‘설국열차’라는 영화는 만화를 각색해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는 만화와 달리 영화에서 보여 줄 수 있는 공간적, 활동적 한계가 많다. 그래서 봉 감독도 이런 한계 상황에 부닥쳐 자신의 연출 능력을 제대로 발휘 할 수 없어 내용 전달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달리는 기차 안에 인간세계의 축소판을 만들려는 시도는 만화에서나 가능 한 것이다. ‘설국열차’라는 영화가 만약 현실에 주안점을 두지 않고, 판타지나 SF물 혹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면 차라리 영화 줄거리를 풀어가기가 훨씬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현실에서 좁디좁은 열차 몇 칸에 세상 군상들의 사회생활을 담아내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고 본다. 

    또한 영화를 본 몇몇 관객들의 말로는 주제가 너무 무겁다는 말을 많이 한다. 관객들이 착각하는 것은 영화가 전하는 주제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제를 알려주고 시작함으로 중반부터는 별로 보여 줄게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오직하면 인터넷 상에서 영화 평을 하는 사이트에서 한 중학생이 써 놓은 비평이 기억난다. 그 학생은 봉 감독이 의도한 대로 비평을 해 놓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내용은 무겁다가 아니라 너무 가벼워 없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한편 이 영화는 감독이 메시지 전달에 급급한 나머지 내용상의 오류도 만만치 않았다. 국무총리로 나오는 여성이 너무 쉽게 하층민들에게 포로로 잡힌다는 설정과 이들 꼬리 칸 사람들의 봉기기 너무나도 쉽게 성공한다는 발상 등이다. 또 크로놀(영화속 마약)과 술에 취해 춤을 추던 무리들이 남궁민수(송강호)무리들이 그들을 통과 할 때는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더니, 갑작스레 뒤 쫓아와 남궁민수 무리를 제지하려 무기를 들고 쫓아오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차 문이 폭발되어 열린 후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 둘이 기차를 내려와 흰색 곰을 발견하는 장면들 이런 것으로는 관객들의 시선을 모으기에는 역부족인 연출이었다.

    줄거리 전개에 또한 문제가 있었다. 총격전을 하는 장면에서 기차의 양수가 많다 보니 정면으로 쳐다보며 서로를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이 등장한다. 유리창이 중간 중간에 있는 설정이었으면서 남궁민수는 무엇 때문에 열차 맨 앞 칸까지 와야만 했는가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남궁민수는 앞 칸이 아니더라도 어느 칸이던지 마음만 먹으면 폭탄을 설치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남궁민수가 열차 앞까지 와야 할 필연적 이유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남궁민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함을 느꼈다. 이외에도 송강호의 딸이 열차 앞 칸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알아내는 능력 또한 관객들의 호기심만 자극시켜 놓고, 아무런 언급 없이 그냥 사장시킴으로써 영화의 재미를 반감 시켜 버리고 말았다. 이쯤 되면 삼류 영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장면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동양의 아이와 아프리카의 아이 두 명이 새롭게 바뀐 세상을 바라보며 끝나는 장면에서 봉 감독은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은 백인이 아니라 동양인과 흑인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필자는 이 메시지가 관객들의 가슴에 와 닿았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인류가 멸망한 시점에 인종 구별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철지난 독일군과 일본군을 연상시키는 복장 연출은 그다지 새롭다거나 자연스럽지 못했다. 예전 고전 영화 시대에 등장 할 법한 연출이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영화는 감독의 사상이 알게 모르게 영화의 줄거리에 녹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영화 ‘설국열차’를 통해 변화와 개혁, 혁신 그리고 새로운 세계 등을 말하고 싶어 하던 감독이 정작 자신은 아무런 변화 없이 예전 영화에서 사용하던 메시지 전달 방법을 사용해 묻어가려 했다. 영화의 주제가 변화인데 감독 자신도 진부한 사고를 버리고 좀 더 새로운 연출과 각색으로 자신의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확실히 전달 되도록 해야겠다. 

     

    (내외신문발)
    수정 답변 삭제 목록
    255개(4/13페이지)
    칼럼·논평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이전다음 글쓰기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