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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부 | 2015.01.27 01:03

    요즘 역사학자는 물론 인문학자들이 바쁘다. 현대의 복잡하고 전문적인 각종 정보들의 홍수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기준과 목표를 제시할 수 있는 선인들의 가르침은 구원의 빛 그 이상이기에 그렇다.

    전자문명의 총화 스마트폰이 세분화시킬 물질문명의 극치 시대를 앞두고, 2000년 전 이상의 인간들이 남긴 메시지가 아직도 아니 앞으로도 유효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정신을 제대로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물질문명의 제대로된 발전의 핵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정신 세계는 태초부터 조화와 상생이 그 기본일 터이다.

    동양 사상은 중국 문명이 그 원류다. 춘추 전국시대에 제자백가들의 쟁명(爭鳴)이야말로 그 사상의 토대를 마련한 힘이었다. 특히 춘추 전국 시대를 포함한 각종 역사적 사건들을 냉철한 역사가의 시각으로 제대로 서술한 책이 있는데, 바로 10여년에 걸친 역작인 사마천의 “사기(太史公記)”다.

    현 중국의 많은 사자성어는 사기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동양 사상의 근간이 되는 책이다. 사기의 효용성은 단순히 역사책의 개념을 넘어서는 사상서와 문학서의 범위까지 아우른다는 점에 있다. 그 당시는 죽간이었지만 총 130권으로 본기 표 서 세가 열전으로 이루어진 기전체 방식의 효시로서 특히 인간들의 각종 삶을 그린 70열전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앞선 중국 초기 역사부터 시작하는 52만 6500자로 이루어진 고도로 압축된 파일이다.

    사기를 빼놓고선 중국 역사를 말할 수 없기에 중국인들이 공자 다음으로 추앙하고 있을 정도로 사마천은 동양 최고의 역사가로 칭해지고 있다. 그가 역작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자못 경건하고 아이러니하다. 당시 한 무제시대에 최고 골칫덩어리였던 북쪽 흉노와의 전투에서 패한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에 처해진 사건을 말함이다. 보통 그 당시는 궁형에 처해지면 분노와 치욕을 못이겨 자살을 하게 되는데, 태사령이었던 아버지의 유언(역사집필)을 받들기 위해 분노의 격정을 역사 서술로 승화시켰던 점은 드라마틱 할 뿐이다.

    만약 그가 원만한 인생을 살았다면 그의 역사서술은 당시 한나라를 칭송하기 위한 장및빛 역사관에 갇혀 있었을게 뻔하다. 하지만, 궁형 이후 그의 역사관은 역사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합리적 귀결에 성공함으로써 동양 역사의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의 말년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역사 서술의 취지와 자신을 소개한 태사공전서에도 알 수 없는데, 어느 역사가의 결론에 따르면 그의 후손들이 성을 달리(同씨,馮씨)하여 살아왔던 것으로 보와 사기에서 무제를 비판한 점 등으로 인해 무제에게 처형되었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점은 안타깝다.

    또 하나는 당시 우리 민족에 대한 서술의 미약이다. 한 무제는 고조선을 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후 설치된 4개의 한 사군의 위치를 사마천은 기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연유로 한 사군을 한반도로 국한시키는 일제 식민사관이 탄생했던 점도 아쉽다.

    현재의 한반도 외적 상황은 긴박하기만 하지만, 대한민국 내부를 들여다보면 찻잔 속의 태풍처럼 평화시대를 만끽하고 있는 국민들이다. 그동안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도기를 넘어 이제는 경제 사회적 과도기에 들어선 느낌은 그만큼 정체기 늪에 빠져 매너리즘에 허덕이고 있는 불안한 시대라는 방증이다.

    정치가나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소위 가진자들의 갑질 문제, 빈부격차 문제, 가족 친족간의 폭력과 살인 등의 사회문제 등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가진 내부의 적이다.

    아버지 사마담의 권유로 20살에 들어서면서 약 3년여에 걸친 중국 대륙 탐방의 경험으로 역사서술에 더욱 탄탄한 내공을 가졌던 사마천은 그 특유의 자기 나름의 서평을 실어 놓았는데, 특히 공직자의 자세나 부자들의 올바른 경제관에 대한 열전은 참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할 것이다.

    그는 순리열전과 폭리열전에서 고위 관료들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한나라 무제시대의 고위 관료였던 급암과 정당시에 대한 인물 논고는 참고할 만하다. 동시대의 친한 관계였던 두사람이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급암은 무제도 어려워 할만큼 강직하고 곧고 호불호가 명확한 사람이었던 반면, 정당시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진 인물이었는데 그렇다고 무른 사람은 아니었다. 둘은 공통되는 점도 명확했다. 원만한 정당시는 오는 손님은 귀천과 고하를 막론하고 차별하지 않았으며 특히 그도 급암과 마찬가지로 물질을 밝히지 않고 사리사욕에 심취하지 않았으며 청렴했다는 점이었다.

    요즘 대한민국은 정치인은 물론 고위 공직자(준공무원 포함)들의 부정부패도 점점 노골적이고 고도화되고 있다. 얼마 전 3조 4 천억원 대의 사기 사건을 일으킨 가전업체 모뉴얼에 얽힌 한국보험공사와 수출입은행의 전현직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그 도를 넘었다는 평가다. 허위 매출 자료를 통해 수출을 부풀려 시중은행으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현장을 무시하고 각종 청탁과 향흥을 받으며 겉핡기식 서류심사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특히 상품권 등을 몰래 수시로 받고 자녀들을 모뉴얼에 취직을 시키기도 했다는 점은 그들의 악의적 고위성을 짐작케 한다. 결국 5천 5백억원은 국민에게 전가되었다.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는 부자들에 대한 인물 서술도 하였는데, 특히 계연이란 인물을 가장 앞에 배치해 두었다. 사마천은 부자 자식들은 저작거리에서 죽는 법이 없고 먹는 것이 해결되어야 예의도 있다며 부자가 되어야 할 근거를 말하고 있는데, 하지만, 부자가 가져야 할 도리가 있음도 밝히고 있다. 마지막 춘추 패자였던 월왕 구천을 보좌했던 범려의 스승인 계연은 시세예측의 대가로 소개되고 있는데, 그의 경제관은 조화와 균형으로 여겨지고 있다. “값이 비쌀 때는 오물을 버리듯이 내다 팔고, 쌀 때는 구슬을 손에 넣듯 사들여라”는 말이나 “폭리를 취하지 말라” 그리고 “물건과 돈은 흐르는 물처럼 원활하게 유통시켜라”는 의미는 시장 안정 나아가서는 국가 경제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재벌은 일정부문 국가경제의 발전의 근간이 되왔던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2세 3세로 넘어가면서 국민이 주었던 권리를 갑질로 돌변시켜 더구나 국가경제를 볼모로 삼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공룡으로 변질되어 있음은 국가 경제 안정과 발전이란 모티브를 상실케 하고 있다.

    현 대한민국은 통일이란 역사적 사명 앞에 서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 역사적 소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민족 발전은 물론 도리어 북한정권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기에 그렇다.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음도 잘 알아야 한다. 북한도 마찬가지 겠지만, 결국 내부 분열이 멸망의 도화선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 내부 분열을 막고 국민 총화를 이루는 길은 통일로 한단계 도약하는 지름길임을 잘 알아야 한다. 국민 95%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공직자나 정치가 재벌들의 부정부패 고리와 갑질문제는 결국 국민 총화를 막는 단초로서 손색이 없으며 벌어지는 빈부격차는 화약고가 분명해 보인다.

    이런 현실 하에서 동양 역사가 제시하는 많은 사상적 이론들은 현 대한민국 위정자들을 포함한 전 국민들의 삶의 도덕적 기준을 바로 잡는 모티브가 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내외신문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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